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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이 사는 계절이면 좋겠다
내 생애 봄날 같은 사진이면 좋겠다
잠깐의 들뜸과 잠깐의 평온이, 아니지 슬며시 왔다 슬
며시 가는 곁 같은 게 보였으면 좋겠다
작은 격렬이 얼비치다가도 세월의 자국이 긁히지 않았
으면 좋겠다
그곳에 마실 가듯 소홀했던 시간을 천천히 업고 가는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벗의 장례식에 다녀와 손에 쥔 비통을 풀고 저녁을 끌
어 덮는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실컷 꿈꾸다 꿈이 꿈같지 않아 탁탁 털며 깬 얼굴이었
으면 좋겠다
꽃들이 사느라 바쁜 사월이면 좋겠다
내가 아는 이들이 바쁘게 사느라 나를 찾지 않는 사월
이면 좋겠다
사진사 양반 잠깐만 숨 한 번 몰아쉬고 찍읍시다
한눈에 봐도 나인 줄 알아 한 사나흘 머뭇머뭇 머물다
가는 사진이면 좋겠다
그러니 어느 날 내가 부르거든 놀러 오시라
나중에 꼭 놀러 오시라
(그림 : 강정희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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