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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솔 - 우물에도 달이 뜨는 집시(詩)/시(詩) 2022. 11. 9. 08:44
새벽잠 대신 우물 속
초유(初乳) 같이 새콤한 달을 길어
바닥 드러난 쌀독을 달빛으로 가득 채우던
처마 밑 여덟의 재잘거림에도
박꽃 같은 어미 가슴은 조각조각 멍이 들어
광주리에는 아시 삶은 꽁보리밥이 매달려 있고
양은솥 식은 갱시기가 주린 배를 채워주던
소나무 삭정이만으로는 허한 속을 채우지 못한 아궁이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나의 첫 개짐을 널름 받아먹고
밤하늘 별자리와 평상위의 재잘거림이
밤이 늦도록 찐 감자와 옥수수를 둘러앉아 먹던
장독대에는 된장 대신 봉숭아가
간장 대신 맨드라미가 다투어 자리하고
달팽이처럼 짊어진 껍질이 세상의 전부인
어미는 어디가고
재잘거림조차 이젠 들리지 않아
그리움을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린
아!
우물에도 달이 뜨던
그 집(그림 : 황규백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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