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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안녕 - 재떨이
    시(詩)/시(詩) 2022. 11. 5. 07:18

    얼마나 많은 숨소리가

    얼마나 많은 근심의 입술이

    이 바닥 위에 떨어졌을까?

    누렇게 뜬 얼굴들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축축한 그리움 같은 것들을 말려대느라

    필시 저 바닥은 절로 눅눅해졌을 것이다

    오래 묵은 근심 오래 묵은 사랑 오래 담아 둔 미움 같은 것들이

    연기처럼 지나간 자리, 자리

     

    아버지는 30년도 넘게 피운 담배를 얼마 전에 끊으셨다

    아버지는 이제 다른 소일거리로

    그리움들을 말리곤 하신다

    허브 향의 사탕을 깨물거나 껌을 씹거나

    그러면서 불태워지는 것들도 있고

    끝끝내 타지 않은 채 팽팽한 줄타기를 벌이는

    시간도 있다

     

    아, 얼마나 긴 숨들이 이 다리 위를 지나갔을까

    아버지의 손때 묻은 재떨이를 씻어 말리다

    문득 우우 우울, 깊은 우물의 냄새

    아버지가 지나간 자리에 웅크리고 있는

    도마뱀 같은

    얼룩무늬의 세월,

    통증도 없이 빠져나간 시간의 갈비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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