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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권 - 같이 살고 싶은 길시(詩)/시(詩) 2022. 11. 3. 15:49
1
일년 중 한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혼자 단풍 드는 길
더디더디 들지만 찬비 떨어지면 붉은빛 지워지는 길
아니 지워버리는 길
그런 길 하나 저녁나절 데리고 살고 싶다
늦가을 청평쯤에서 가평으로 차 몰고 가다 바람 세워 놓고
물어본 길
목적지 없이 들어가본 외길
땅에서 흘러다니는 단풍잎들만 길 쓸고 있는 길
일년 내내 숨어 있다가 한 열흘쯤 사람들한테 들키는 길
그런 길 하나 늘그막에 데리고 같이 살아주고 싶다
2
이 겨울 흰 붓을 쥐고 청평으로 가서 마을도 지우고 길들도 지우고
북한강의 나무들도 지우고
김나는 연통 서너 개만 남겨놓고
온종일
마을과
언 강과
낙엽 쌓인 숲을 지운다.
그러나 내가 지우지 못하는 길이 있다.
약간은 구형인 승용차 바큇자국과
이제 어느정도 마음이 늙어버린
남자와 여자가 걷다가 걷다가 더 가지 않고 온 길이다.
(그림 : 정인성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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