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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주송 - 비를 틀어 놓고
    시(詩)/시(詩) 2022. 11. 5. 07:11

     

    비를 틀어 놓으면

    몇 개의 주파수가 생긴다

     

    오래전에 죽은 애인이 다이얼을 돌려 내게 맞춰 왔다

    잡음이 들어가고 소리가 찌그러졌으나 이내 빗줄기 사이로 전파가 흩어졌다

     

    남극이나 북극 같은 곳에서

    라디오를 틀면 어떤 소리가 들릴까

    신호는 바로 얼어 버리고

    빙하 속엔 셀 수도 없는 헤르츠가

    갇혀 있을 것인데

     

    어느 나라에선 빗소리 틈에서

    씨앗들이 발아하고

    수생 식물들이 자란다고 한다

     

    비를 틀어 놓으면 반나절쯤은 꿈과 생시가 서로 뒤바뀌기도 한다

    섭씨들이 연결을 시도하면 태어나는 중이거나 목숨이 할당되는 중이라고,

    또 한바탕 비 내리는 소리를 서둘러 잠그는 것이다

     

    단절된 사람을 기억하는 것과 기념하는 일은

    한 사람을 구축하는 데 드는 광역대에

    접속하는 것이라는데

     

    이중창을 오래 들여다보면 마주 보던 입김으로 급히 써 내려간 모호한 흘림체가 남아 있다

    잠재된 예각이 둔각으로 열릴 때까지 지저귀던 입술들

     

    안부를 묻는 방향이 바뀔 때마다

    빗소리가 새 주파수를 튼다

    그런 날씨면 나는 무방비로 노출된다

    (그림 : 김명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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