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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남희 - 감천 마을시(詩)/시(詩) 2022. 7. 15. 12:29
경사진 골목길에 내 달리는 마을버스
거미처럼 납작 엎드리면 통과될까
피난 시절 언 손 감싸고
부르튼 손 담벼락에 녹이던, 그런 한때가 숨어 있다
탄탄한 세로줄 계단에 매달린 듯
엉거주춤한 노파의 퇴행성 무릎관절은
아직 물 마르지 않았는지
내쉬는 축축한 한숨 소리에
건넌 집 창살이 출렁거렸다면
쉿, 옥녀봉 나무들 또한
오늘 거친 호흡법이다
골목이 삼킨 비릿한 피바람 진동해도
그 사이사이로 비대한 수레가 지나가자
골목의 헐은 위장이 잠시 빵빵 해진다
골목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발자국들
그 다닥다닥한 바퀴자국
꿀꺽 삼킨 위장술 뛰어난 좁은 골목
배고픈 거미는 매일 말간 얼굴인데
거미의 내장 속 승객이었던 나
빨고 있던 막대사탕 하나 툭 던지자
단내가 온기가 되는 홀쭉한 골목이 발그레하다
(그림 : 박용섭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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