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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경미 - 꽃 지는 날엔
    시(詩)/김경미 2021. 8. 1. 16:10

     

    꽃 피는 날엔

    누구와도 다투지 않기로 한다

     

    꽃 지는 날엔

    어떤 일도 후회하지 않기로 한다

     

    연두색 잎들 초록색으로 바뀔 땐

    낡은 구두로

    바다 위 돛단배와 물고기를 만든다

     

    어디선가 기차 지나가는 소리 들리면

    누군가의 잘못을 용서하고

     

    저녁 종소리 들릴 듯 말 듯 기억이

    자꾸 고개를 돌리면

    내 잘못을 용서한다

     

    혀로 망친 날은 용서하지 않는다

    일주일이나 보름 동안 별빛 보며

    세 시간 이상씩 걸어도 부족하다

     

    아무것도 믿지 않아서 출구가 없었던 날들

     

    20대가 다 가도록 아름답지 못했고

    아름답기도 전에 20대가 다 갔으니

     

    서른과 마흔을 보낼수록 점점 더 산뜻해져야 한다

     

    그런 봄날의 믿음

    차츰과 주춤의 간격들

     

    가방 무거운 날엔 입술도 무거워야 한다

    종일 아무와도 말하지 않는다

     

    눈물을 잊으면 부족한 게 점점 많아져

    얼굴이 곤두서네

     

    비 오는 날에도

    비 오지 않는 날에도

    아무와도 다투지 않기로 하지만

     

    꽃 피는 날에도

    꽃 지는 날에도

    후회가 많아서 운다

     

    세상 살면서 가장 쓸모 있는 건

    뉘우침뿐이라고

     

    꽃 피는 날에도 꽃 지는 날에도

    (그림 : 류은자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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