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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윤 - 소리가 불을 켠다시(詩)/임동윤 2020. 3. 14. 09:41
말랑말랑 서리 맞은 감들이
추운 허공에 불을 매달고 있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인데
가끔 바닥으로 몸을 던지기도 한다
철퍼덕, 철퍼덕
떨어지는 소리로 나무 밑이 환하다
손닿을 수 없이 높은,
장대로도 따 내릴 수 없는
저 아득한 거리에 날짐승들을 위해
하느님이 매달아 놓은 겨울양식
작고 연약한 벌레들을 위하여
철퍼덕 떨어뜨려주시기도 하고
추운 허공의 새들을 위하여
하늘 한 귀퉁이 비워놓으시기도 한다
서로 등 돌리고 사는 땅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넉넉한
저 오래된 나무 가지 아래,
떨어지는 소리가 주홍 불을 켠다
(그림 : 안창표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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