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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동윤 - 괭이부리마을
    시(詩)/임동윤 2018. 8. 14. 15:30

     

    낮은 지붕들이 구름을 잡고 소꿉놀이를 한다

    중심을 향해 달려가는 것들은 줄행랑을 치고

    따뜻한 숨결 하나 느껴지지 않는 대낮이

    낡은 전신주에 기대 펄럭펄럭 바람을 탄다

    가난은 이곳의 흔한 전리품이어서

    구겨진 방에서 그늘은 제 부피를 늘이고

    골목을 할퀴는 밤 고양이족들처럼

    이곳 사람들은 씹다 뱉어낸 단맛 잃은 껌이다

    시도 때도 없이 나뭇잎으로 뚝뚝 떨어진다

    가진 것이 없어 훔칠 것도 없는 동네

    그래서 골목이 마당이고 방이다

    빨랫줄에 걸려서 펄럭거리는 옷들

    저 속에 흔들리는 한 시절이 들어있을 것이다

    젖은 몸들이 달빛 풀어 씻겨갈 때쯤

    전신주에 걸린 구인광고전단은 낡아만 간다

    제 길을 찾아 하늘 오르는 저 나무들

    방법의 나무들이 스스로 나이테를 쟁이듯이

    오랜 상처를 푸성귀로 채우는 아침 한 때

    어디로 밥벌이를 떠나서 텅텅 빈 마을

    휴대폰 고리처럼 노인들만 오롯이 남았다

    폐지 실은 유모차에 기댄 마른 질경이풀들

    등뼈의 꼿꼿함도 다 놓아버린 모습들

    젖은 폐지더미처럼 검버섯 곰팡이꽃이 핀다

    잔주름 이마에 햇빛이 손을 대면

    체온이 식어가는 핏줄은 세계지도를 그렸다

    어느 곳으로도 날아가지 못하는 풀들

    햇빛이 겨우 몸을 받치고 있는 사이

    방금 내려온 구름은 담벼락에 기대 존다

    괭이부리마을 : 인천 동구 화도진로186번길 48

    일제강점기 노동자의 집단합숙소로, 6·25 전쟁 이후에 황해도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정착하며 쪽방촌이 형성,

    만석부두에 고양이 섬(猫島)이라고 불렸던 섬의 이름을 따 괭이부리라는 지명으로 불림

    (그림 : 이은황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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