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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윤 - 마음그늘시(詩)/임동윤 2018. 6. 2. 22:13
마음엔 늘 나 아닌 그 사내가 살고 있다
내 마음의 행로를 따라 제대로 걷지 못하게 한
그와 이처럼 오래 동거해왔다니,
단칼에 그를 뿌리칠 수 있는 길은 처음부터 없었다
조금씩 재치와 부끄러움과 체면을 알면서
내 얼굴은 철판처럼 두꺼워지고 가면이 되었다
그때부터 그와 나 사이엔 단단한 끈이 있어
세 치 짧은 혀로 마음에도 없는 말로 살아왔을 뿐
그리하여 상처투성이 그늘만 남았을 뿐
아직 강물처럼 흐르지 못하고
마음에도 없는 말로 허구의 강을 허우적거리는
간사한 내 세치의 혀, 그 혀가 건너는 흐린 세상
이 몹쓸 놈의 혀를 단칼에 잘라낼 수는 없을까
밤새 담금질로 눈먼 혀를 두드려볼 뿐
너무 오래 늪지를 걸어온 발이 습관처럼 올라가는
우리 가파른 삶이 출렁거리는 바다
굵은 소금으로 내 세 치 혀를 염장해볼 뿐,
(그림 : 허성희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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