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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윤 - 스파이드맨시(詩)/임동윤 2019. 2. 24. 11:57
그는 빌딩에 붙어산다, 가느다란 거미줄에 체중을 묶고
여전히 30층 유리벽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중이다
종일 길거리를 쏘다녔으나 아무 것도 얻지 못한 눈물들이
그렁그렁 얼룩진 벽을, 부릉부릉 전속력으로 질주하지만
늘 목적지를 벗어나는 울분이 덕지덕지 말라붙은 벽을,
윈덱스 세제로 박박 밀어낸다, 물과 세제는 2대 1
너무 묽어서는 아무 것도 지울 수 없다
창문에 낀 마음들을 닦고 문지르지만 지워지지 않는다
세상사는 이치도 이런 것이 아닐까, 등줄기가 흠뻑 젖는다
잠시 허리를 펴고 유리창 안의 세계를 훔쳐본다
자판을 두들기고, 원탁에 앉아 회의를 하고, 하나같이
제 자리에 착실히 붙어 부지런히 손과 몸을 움직인다
벌집 같은 빌딩 속에서 제 몫의 거미줄을 치고 있는 사람들
저 무리 속에 그가 끼어있던 날도 있었다
그러다가 몰아친 바람이 그를 허공으로 내몰았다
빌딩 앞 벚나무가 후루루 후루루 봄을 분사하고
내려왔다가 올라가기를 몇 번, 그는 마침내 연착륙한다
그가 지나온 길 아득히, 구름 둥둥 떠다니고
첨탑 같은 빌딩 끝 너울너울 황금빛이 밀물지고 있다
(그림 : 박경윤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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