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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왕노 - 11 월에는 꽃 걸음으로 오시라
    시(詩)/김왕노 2019. 11. 9. 13:59

     

    꽃의 노란 발자국 소리가 눈부시다.

    서릿발 선 맨 땅을 밟으며 잔물결이 한 곳으로 모이듯

    아직도 걸어서 오는 소국의 무수한 발소리, 발소리

     

    맞지 않는 일조량 속에서

    끓어오르기만 한 청춘의 가슴을 식혀

    모두가 꽃 피어 영광이라며 잔을 높이 들 때도

    꽃 기척 없이

    떫고 작은 자잘한 얼굴로 가을 모퉁이를 지나

    뇌관을 일제히 터뜨린 듯이

    소국이 연쇄반응으로 피어나 꽃 걸음으로 오는 아침

     

    찬물소리로 귀와 눈을 맑게 씻어낸 채

    소국이 따라온 길을 밟아 꽃구경 오시라.

    꽃 걸음으로 가을 가장 깊은 곳, 곧 겨울과 맞닥뜨릴 지점으로

    네 귀한 걸음걸이로 와서 꽃을 즐기시라.

    꽃 하나 핀다는 것이 그저 피는 것이 아니라

    별빛이 오래 초점을 맞춰 불씨가 피어나듯 피어나는 것이라.

    꽃 한번 피어 불멸로 가는 것이 아니라

    피었다가 한 번 지면 영원히 지는 길로 접어드는 것이라

    한 번 피었다가 한 번 지면 마감되는 꽃이라

    꽃에게 갈채를 보내기 위해 꽃 앞에서 꽃 짐승 되어

    꽃에게 마음껏 재롱을 부리려고 오시라.

    꽃이 오는 꽃 걸음이란 영혼의 가랑이가 찢어지는

    고통의 꽃 걸음이라는 것을 한번 쯤 체험하며 오시라.

     

    새털구름이 비질하고 간 새파란 하늘 아래로

    무청 푸르렀던 언덕을 지나 티 하나 없는 꽃의 사상에 젖어

    한번쯤 꽃의 자세를 잡아보며 오시라.

    꽃 걸음을 걷기 전까지 몰아친 비바람으로

    고장 난 밤과 낮의 어려움으로 리듬을 잃어버린 혼란을

    말똥처럼 치우고 비로소 건국한 작은 꽃 나라지만

    꽃이 세운 나라는 미지의 나라라 순결의 나라라

    수신제가하듯 정결한 마음으로 꽃에게 오시라.

    소국이 떠받힌 작고 푸른 하늘들이

    점점 평수를 넓혀 소국의 하늘 우리의 하늘

    백두대간의 하늘 신화의 하늘 우사 운사 풍사의 하늘로 펼쳐질 테니

    소국이 떠받힌 작고 푸른 하늘들이 흔들리지 않게

    조심조심 걸어 꽃 나라로 오시라.

     

    와서는 국화주에 취한 듯

    소국의 향기에 마음껏 취하시라.

    매난국죽을 치듯 정갈했던 마음을 하루 쯤 풀고

    소국에게 환호를 보내며 소국의 제전으로 이끄시라.

    한 번쯤 소국나라를 체험한 노란 기억으로

    혁명의 불길 지펴 어두운 이 나라의 판을 갈아엎는

    그런 꿈꾸어도 좋으니 망설임 없이 소국나라에 와

    소국나라를 마음껏 누리시라.

    소국이 지면 끝물의 나날이니 마음껏 소국을 즐기시라.

    11 월에는 제발 꽃 걸음으로 꽃을 만나러 오시라.

    (그림 : 안모경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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