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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왕노 - 너를 꽃이라 부르고 열흘을 울었다시(詩)/김왕노 2019. 4. 19. 16:12
비 추적추적 내리는 날 화무십일홍이란 말 앞에서 울었다.
너를 그 무엇이라 부르면 그 무엇이 된다기에
너를 꽃이라 불렀다. 십장생 해, 산, 물, 돌, 구름, 소나무, 불로초
거북, 학, 사슴 중에 학이거나 사슴으로 불러야 했는데
나 화무십일홍이란 말을 몰라 너를 꽃이라 불렀기에 울었다.
나 십장생을 몰라 목소리를 가다듬었으나 꽃이라 불렀기에 울었다.
단명의 꽃으로 불렀기에 내 단명할 사랑을 예감해 울었다.
사랑이라면 가볍더라도 구름 정도로 오래 흘러가야 했는데
세상에나 겨우 십 일이라니 십 일 동안 꽃일 너를 사랑해야 하다니
그 십 일을 위해 너를 꽃이라 불렀기에 너는 내게 와 꽃이 되었나니
꽃에 취하다 보니 꽃그늘을 보지 못했나니 너를 꽃이라 부르고
핏빛 꽃잎 같은 입술로 울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에메랄드, 진주, 비취, 사파이어, 마노
자수정, 남옥, 사금석, 혈석, 카넬리안, 공작석, 오팔 장미석,
루비도 있는데 너를 두고 때 되면 시드는 꽃이라 부르고 울었다.
지는 꽃보다 더 흐느끼고 이별의 사람보다 더 깊고 깊게 울었다.
(그림 : 박태식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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