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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왕노 - 블랙로즈를 찾아가는 밤시(詩)/김왕노 2020. 6. 26. 15:18
블랙로즈는 지하의 술집 나자리노에 있을까. 한 때 작은 사롱의 얼굴 마담이, 차가운 얼굴의 블랙로즈,
떠나온 고향 이야기 할 때만은 오누이처럼 다정다감했던 블랙로즈, 장미였으나 가시가 없었던 블랙로즈,
검은 호흡을 끝없이 하던 블랙로즈
철 지난 줄 모르고 늦게 핀 꽃처럼 블랙로즈는 어디서 끝물의 들꽃처럼 시들고 있는지, 한 잔의 술을 따
르면서도 정성을 다해 제 생을 살짝 기울여 따라주던 여자. 술에 꽃잎이 흠뻑 젖었어도 사리분별이 뚜렷
했던 블랙로즈, 해저물면 날 기다린다던 블랙로즈
블랙로즈를 찾아가는 저녁, 블랙로즈에게로 데려가려고 어두운 골목에서 나타나는 삐끼가 그리운 밤, 담
위의 하얀 박꽃과 어우러진 달빛이 그리워지는데 숨죽인 국경 같은 마을을 지나 블랙로즈를 찾아 나선 밤,
블랙로즈를 찾아 월경하다 난사로 죽어도 좋은 밤 블랙로즈는 퇴락과 퇴색으로 블랙로즈란 이름마저 잃은
채 한 송이 드라이플라워가 되었는지 모른다. 아니면 뒤늦게나 가시가 무섭게 돋아난 싱싱한 블랙로즈로
밤의 중심에 피었는지 모른다. 블랙로즈가 흔들렸을 때 잠시 지축이 흔들렸을지 모른다.
점점 거대하게 피어난 블랙로즈가 내 생을 흡입하려 먼 하늘서 블랙홀로 천천히 흘러오고 있을지 모른다.
아니면 지하 술집 나자리노에서 저주로 늑대가 된 내가 오기를 쓸쓸하게 기다릴지 모른다. 저주가 살아날
달밤을 기다리는지 모른다.
(그림 : 이흥덕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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