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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은 - 비의 수상식(授賞式)시(詩)/시(詩) 2019. 8. 23. 10:16
너를 보내고 비에 닿는다
마침내 당도하는 비, 생각 속에도 비는 내려
빗방울 하나하나 꽂힐 때마다
파문 지는 바다, 비의 늪에 빠진다
비의 시체처럼 흠뻑 젖은 생각에
나를 도둑 맞는다
돌아보면 어디서나 비를 맞았지
손 내밀고 악수하던 들판
수식 없는 말을 다정하게 주고받으며
잘 가요, 등 돌리던 나뭇잎들
아무 일 없다는 듯 쓸쓸히 웃으며
확인하던 빈터들
버스는 늘 제시간에 오지 않았지
일기 예보처럼
일기 예보가 없어도 도착하는 빗방울
버스정류장에 서 있던 나는 누구였을까
버스처럼 너를 지나가는 우산이었을까
침대 위에 누워 죽은 듯이 누워 비에 닿는다
돌확에 든 듯 생각의 팔다리에 비의 파편이 튄다
돌에도 돌 아닌 것에도 공평하게 내리는 비
장소(場所)가 아닌 것에도
어제 내리고 오늘 또 내리는 비
상패도 상장도 없는
슬픔에 닿는다
오래전에 너를 떠나 보낸 것처럼(그림 : 전소영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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