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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수 - 그 여름의 내 감꽃시(詩)/시(詩) 2019. 7. 17. 09:44
여름은 감꽃 목걸이 엮어 주렁주렁
목에 걸면서 시작됐다
반쯤 벗은 소년들은 거웃이 돋기 시작한
잠지를 딸랑거리며 저수지로 뛰어들었다
놀다가 지치면 쌉싸래한 감꽃을
한 움큼 입에 넣고 어기적거리며 씹어 삼켰다
계집애들의 여름도 다르지 않았다
머스마 같은 몇몇 소녀는
러닝 차림으로 저수지에 뛰어들고
소년들은 봉긋 솟기 시작한 소녀들의
가슴을 특툭 치면서 낄낄거렸다
감꽃 목걸이 걸어주던 그 애가
그해 여름 저수지 물 위로 영영 나오지
않던 그날까지는 여름은 평온했다
오늘 저 아파트 사이
그 애가 걸어준 감꽃 목걸이
쌉싸래한 감꽃들이 탐스러운 감이 되어 매달렸다
그 소녀는 그곳에서 잘 있을까
서둘러 떠난 그곳에서 소녀는 잘 살았을까
지상에서의 세월은 수십 번 감꽃이 피고 졌지만
아직도 감꽃이 얼룩진 옷을 입은 채
서둘러 떠난 소녀를 잊을 수 없다
그해 여름의 감꽃이 홍시가 되어 물러터지던 날
슬그머니 묘비도 없는 그 소녀의 집 언저리에
붉디붉은 내 마음을 가져다 놓았다
선머스마 같던, 웃을 때 덧니가 예뻤던
그 여름의 내 감꽃
(그림 : 김길상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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