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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영 - 열두 번째 얼굴시(詩)/시(詩) 2019. 7. 5. 10:41
거울 앞에 섭니다
마지막 얼굴로 거울을 보는 당신은 누구신지
검은 뿔테안경을 써도 어색합니다
음각으로 파낸 주름이 깊어 웃을 땐 더욱 그러합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인상인데 얼굴 두꺼운 세상,
코끝이 빨갛거나 살갗이 얇아지기 전
멍들거나 찢어지기 전에
새 얼굴로 바꿔줘야 합니다
번번이 교체시기를 놓친 그는 노안으로 살았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구레나룻이 있던 시절
그 면상으로 직장을 구하고 지금의 아내를 만났지만
오래 사용하진 못했습니다
몇 번의 야근과 각방으로 구레나룻은 사라지고
매력적인 날들은 조기 만료,
아홉 번째 얼굴부터는
표정을 들키지 않는 사항이 추가되었습니다
눈썹문신 된 얼굴을 사용 중인 아내가
모나리자 미소를 덧칠하는 밤
그녀 몰래 숨겨둔 낡은 얼굴들을 꺼내봅니다
큰아들이었다가 이웃집 남자였다가 퇴직한 아버지였다가
병든 노인이었던 그는
마지막 얼굴을 벗어놓습니다
눈도 코도 입도 없이 환한 동그라미
달이 뜹니다 거울 속 아이가
열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놉니다
(그림 : 송영옥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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