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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영 - 밀양 고동국시(詩)/시(詩) 2019. 7. 3. 11:48
더운 날엔 차갑게
추운 날엔 따뜻하게 내놓는다는 고동국
비 내리는 일요일
식당 의자들은 비어 있었지만
니는 혼자 온 오십 대 여자와 합석을 했다
식당 주인이 엄마와 딸처럼 함께 앉아 먹으라며
상을 차려 내왔다
내가 그녀 앞에 수저를 놓아주자
그녀가 내 컵에 조용히 물을 따라준다
그녀와 나는 서로 먹는 속도를 맞춰주며
조금 바켜 앉아 국에 만 밥을 삼켰다
주인은 비가 내려 따뜻한 국을 내놓았다고 했지만
나는 예전의 끈적끈적하고 착잡한 맛이 그리웠다
차가운 고동국은 말 못할 사랑을 품고 있다
담백하고 희멀건 국물 속에는 열망처럼
새파란 부추들이 뒤섞여 있어
슬그머니 피해가며 서러움을 삼켜야 한다
한 끼니의 슬픔이여,
상동역에서 잠시 멈췄던 기차가
다시 출발하는 그 힘을 믿어보기로 하자
낯선 여자와 모녀처럼 앉아 여독을 푼다
두 개의 플라스틱 국그릇이
백야(白夜)의 태양처럼 식탁 위에 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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