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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고 있었다
역전의 용사들은 구석에 몰린 경험을 가지고 있다
지는 것이 이기는 길이라던 아버지가 역전다방에서 허리를 꺾은 채 흔들릴 때도
기차는 역사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부러진 가지 끝에서 걸음을 재촉하던 종착역, 커피가 식어가는 동안 꽃은 시든다는 것을,
상처를 안고 사는 용사들은 알고 있었다
그렇게 봄은 지고 있었지만 그날은 지고 있어야 이길 수 있는 계절이었으므로,
다방을 나온 아버지는 역전 반대 방향으로 갔는지도 모른다
선로가 닿지 않는 길, 부르다 만 노래 한 곡조가 삼학도 파도 깊은 그림자가 되어 따라갔는지도 모른다
생의 무게를 이기고 서 있는 가지 많은 나무들처럼 용사들의 어깨는 기울고
바람 잘 날 없는 역전통에 저녁이 기적을 울리며 찾아왔다
계절은 계절에게,
아버지는 아버지에게 눈물과 설움을 물려주었지만
이곳은 역전,
광장의 시계탑에서 약속은 이어지고
어둠은 지고 있었다
(그림 : 김지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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