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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의 - 태평동 살구꽃
    시(詩)/시(詩) 2019. 5. 26. 21:57

     

    산소 불꽃이 분필 선을 따라가면

    무쇠 철판이 힘없이 잘려나간다

    쇠톱이나 전동공구로는 엄두도 나지 않는 두께

    태평공업사에서는 태평하게 절단된다

    야성의 속살 태우는 불꽃은 허공 속으로 소멸되고

    고성을 지르며 흩어지는 쇳소리가

    급류의 소용돌이 같은 귓바퀴를 돌아 나와

    철공소 바닥에 소복이 쌓였다

    시간을 하나로 잇는 태초 이후의 빛은

    프라나의 온기를 식물성으로 분류했다

    마른 줄기를 타고 올라와 꽃받침에 닿으면

    온 동네 튀밥 튀기듯 꽃을 피웠다

    모든 색조가 빅뱅의 어둠에서 방출되고

    46억 년 동안 빛에 대한 골똘한 명상이

    꽃이라 불리는 독특한 별을 탄생시켰다

    우주 귀퉁이에서조차 쉽게 들키는 분광은

    눈앞에서 초신성이 되어 사라지고

    지상에 불시착한 풀씨들은 꽃대궁을 뽑아 올렸다

    어디론가 사라진 순간들이

    텅 빈 어둠의 동공을 채우고 있다

    철대문 틈새로 번쩍번쩍 불똥 튀는 태평공업사

    분필 선의 뒤돌아본 흔적으로 길어진 골목이

    구부러진 자세를 풀고 있다

    아득할수록 더 명징한 빛의 씨앗들이

    봄 하늘 꽉 차게 끌어안고 살구꽃 피었다

    프라나 (prana) : 인도철학에서 신체 활력의 '기'를 가리키는 말.

    초기 힌두교 철학, 특히 우파니샤드에서는 핵심 개념으로서, 생명의 근원이며 영원히 또는 내세까지 지속되는 '마지막 숨'으로 생각했다.

    시대에 따라 프라나는 자아와 동일시되었으며, 숨을 쉬거나 음식을 몸 안에서 소화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하는 '5가지 프라나'의 첫번째 것이기도 하다.

    46억 년 : 지구의 나이

    (그림 : 최*근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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