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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권 - 소는 생각한다시(詩)/시(詩) 2019. 5. 27. 13:26
내가 소를 밭 가는 도구라고 생각할 때
소는 나를 식구라고 생각한다
식구를 위해 땀 흘려 일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변소에 앉아 체중을 아래로 누르며
변소귀신이 엉덩이를 물어뜯을지 모른다고
두려워할 때
소는 변소 옆 마구간을 지키며 어둠을 반추하기 좋을 때라고,
쓸데없는 걱정 말고 똥이나 누라고 한다
소가 송아지를 낳아 재산이 늘었다고 생각할 때
입 하나 더 생기게 해서 미안하다고 한다
내가 따뜻한 방에서 자고
소를 마구간에서 재울 때
소는 자기 방이 있는 것이 어디냐 생각한다
소가 늙어 우시장에 팔아야겠다 생각할 때
소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처럼 작은 무덤하나
만들어줄 거라고 생각한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일등급 육우일 때도
소는 도축장에 들어서며, 아닌데, 왜 이러지? 한다
소는 생각한다
소는 생각한다
소는 생각한다
생각한다
(그림 : 장정근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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