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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택 - 화보사진 찍기시(詩)/시(詩) 2019. 5. 27. 13:27
카메라가 첫 셔터를 눌렀을 때
목 위에 묵직하고 뻐근한 무게가 느껴졌다.
그 무게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표정들이
얼떨떨한 그대로 렌즈에 연거푸 박히고 있었다.
얼굴은 목에서 뺄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어리벙벙한 표정 속에서
렌즈는 어설픔과 난처함을 정확하게 잡아냈다.
움직이는지 모르고 움직이던 목 근육 어깨 근육을
렌즈가 막대기처럼 단정하게 경직시켰다.
웃는지 모르고 웃던 웃음을
김치 웃음과 치즈 웃음으로 바꿔주었다.
모든 제멋대로가 재빨리 공손해졌다.
사진에 고정되기 전에 미리 부동자세가 되었다.
자세는 품위 있는 위치를 찾지 못해
어정쩡하게 세련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여보라는데도
몸과 표정은 자연스럽게 굳어졌다.
렌즈에 포착된 우스꽝스러운 순간은
영원히 움직이지 못하도록 단단하게 고정되었다.
어디를 어떻게 렌즈에 붙들렸는지 몰라
몸에 갇힌 몸은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그림 : 김명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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