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공정숙 - 문안(問安)시(詩)/시(詩) 2019. 5. 28. 12:54
당신을 영원히 떠나보낼 때에도 청보리 내 마음 밭은 언제나처럼 푸르렀고
부드러운 바람결에 잔잔히 물이랑을 만들 뿐 비바람이 불거나 천둥치는 소리는 듣지 못했기에
슬픔도 그리움도 함께 날아갔노라 믿었다
빛바랜 사진 속에서 문득 당신의 옛 당부와 안부가 떠오르면
비 오는 날 우산을 쓰거나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칼을 매만지는 일처럼,
지하철에 마주 앉은 타인의 일상처럼 곧 무심해지리라 생각했다
밥을 먹으면서 생선살을 숟가락에 올려주고 여름날 부채바람을 건네주던 당신과 잠시 헤어질 때면
풍경처럼 멀리 하나의 소실점으로 나를 배웅하던 당신이 내게 잘 있느냐며 아직도 안부를 묻고 또 묻는다
당신이 읽던 책갈피에 남아있는 치자빛 눈물방울 흔적과 여름 저녁의 모기떼와 미끈거리는 칼국수며
찔레순의 풋내, 당신의 노랫가락이 내게 연이어 안부를 전해와도 나는 절대로 당신의 안부를 물을 수 없다
(그림 : 손미량 화백)
'시(詩) >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미리 - 봄의 전입신고 (0) 2019.05.29 정수경 - 딸꾹질 (0) 2019.05.29 사공정숙 - 양말을 개키며 (0) 2019.05.27 김기택 - 화보사진 찍기 (0) 2019.05.27 박형권 - 소는 생각한다 (0) 2019.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