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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채길우 - 승진
    시(詩)/시(詩) 2019. 4. 23. 09:02

     

    야생완두는

    오랫동안 인간에게 길들여지면서

    열매가 다 익은 후에도

    자발적으로 깍지가 열려

    씨앗을 퍼뜨리는 능력을

    최대한 억제할 수 있었으므로

    식용작물이 되었다.

     

    꼬투리를 잡은 누군가의 손이

    비틀린 멱살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줄 때까지

    입 꽉 다물어 속을 비치지 않았기에

    사랑받았고

    함부로 옷이 벗겨져

    다섯 알 중 네 개를 잃고도

    하나쯤은 건사할 수 있다는 산술로

    계약을 따냈다.

     

    완두는 좀처럼 터지지 않는다.

    분노하지 않는 초록의 순종으로서

    같은 껍질 속 똑같이 생긴 얼굴로

    가지런히 줄 서 기다리며

    선별과 배제는 우연이거나

    더 높은 곳의 뜻임을

    순순하게 다짐하는 겸손한 위치에서조차

    간택되기 위해 무거워진 목을 늘어뜨린

    비산도 탈출도 하지 않는 어여쁜 두상들

    (그림 : 유예진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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