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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고 두터운 잎으로 햇살을 듬뿍 받으며
꽃망울 터뜨리는 함박꽃나무 그늘 아래 앉아
다소 이른 더위를 식히는데
나무는 한창 좋은 계절을 주저없이 만끽하고 있다
함박꽃나무 그늘 아래 계곡물도 좋아
주인 잘못 만나 고생 많은 발을 씻는데
땅속 깊이 벋은 뿌리들은 신나게 수액을 길어 올리고
벙그러진 꽃송이는 맑고 깊은 향내 스스럼없이 뿜어낸다
생글생글 환히 웃는 꽃송이 보고
숨결에 생생히 스미는 꽃내음 맡으며 문득 돌이켜보니
아 나는 제대로 시원하게 함박웃음 한번 웃지 못하고
너무 많이 조심하고 웅크리며 살아왔구나.
(그림 : 신재흥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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