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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환 - 볼트와 너트시(詩)/시(詩) 2019. 4. 13. 09:05
지상 30미터 허공은 버리지 못한 현기증이다
볼트가 다녀간 뒤 기다리던 철주가 흔들리는 줄을 타고 왔다
하늘로 뻗은 기둥과 기둥 사이를 묶기 위해 볼트와 너트가 신경을 세웠다 몸 흔들려도 그러나 기다려야 했다
어지러운 지상은 내려다보지 말고 멀어질수록 아름다운 것이 기다림이라는 걸 안다
비틀거리며 이동해 온 빔이 손아귀에 들고 기둥과 기둥 사이를 비끌어 매기 위해 구멍을 찾았다
건너편 조씨도 재빠른 손놀림으로 철골을 고정시켰다 볼트와 너트의 구멍은 쉽게 맞지 않았다
맞추어도 어긋나기만 하는 길 밖에 사랑은 못난 입술처럼 딱딱하기만 하다
비틀어 구멍을 맞추고 볼트를 끼운 뒤 흔들리지 않게 조이면 허공 하나가 사각 틀에 갇혔다
철골 구조가 구름을 타고 흔들렸다 흔들려도 무너지지 않는 성채
다음 철골이 올 때까지 기둥 가로대에 걸터앉아 지상을 향하여 기침을 뱉고 연기를 뿜었다
이쪽 하늘을 올려다보는 건너편 조씨가 웃었다
며느리가 안겨준 손자 고추 생각을 했을까
연기 사이로 흔들리며 올라가는 고층, 하늘은 높은 허기를 먹고 네모난 감옥에 갇혔다
(그림 : 이윤경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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