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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유원 - 블루스를 부를 권리
    시(詩)/시(詩) 2019. 4. 12. 10:24

     

    누구나 블루스를 부를 권리가 있어

    슬플 때 슬퍼할 줄 알고

    기쁠 때 기뻐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감정 따원 흘려보내는 거야

    창밖의 빗물처럼

    그건 가만히 있기만 해도 고이는 거니까

    바닥날까 걱정할 필요는 없는 거야

     

    슬플 때 슬퍼할 줄 알고

    기쁠 때 기뻐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록 사람이 아닐지라도

    개미에게는 개미의 블루스를

    여치에게는 여치의 블루스를

    꼭 흑인이 아니어도 누구나

    흑인영가를 부를 수 있는 것처럼

    무릎을 꿇고 우는 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라면

    꼭 사람이 아니더라도

    나방 각다귀 바퀴벌레

    혹은 엉겅퀴라도

    아니면 그것들 모두 다 마구 뒤엉켜서라도

    흑인영가를 부를 수 있어

     

    흑인영가를 부르며 왕국을 건설할 권리가 있어

    개미에게는 개미의 왕국을

    여치에게는 여치의 왕국을

     

    다들 열심히 자신들의 왕국을 건설해나갈 때

    내일의 블루스는 오늘부로 더 이상 우리가 알 바

    아닌 게 돼버리고

     

    저마다 한 왕국의 왕이 된 우리를 위해

    창밖으로 비가 퍼 붓는 동안

    길 위에는 무수히 많은 왕관들이 생겨났다 사라져 가고 있어

     

    미치광이들에게만 씌워주는 왕관

    미치광이들만이 당당하게 쓸 수 있는 왕관

     

    그 왕관들이

    강물처럼 흐르며 블루스를 부르고 있어

    (그림 : 방정아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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