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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유원 - 항구의 겨울시(詩)/시(詩) 2019. 3. 13. 22:53
항구의 겨울, 항구한 겨울은 뺄셈이 불가능한 세계.
마냥 쌓이기만 한다. 쌓여서 오직 잊힐 뿐.
항구의 겨울, 항구한 겨울 앞에서 우린 입을 다문다.
함구한 하늘이 속으로 울고 내리던 눈이 녹는다.
내리던 눈이 녹다 말고 공중에서 춤을 춘다.
눈의 속도는 늘 비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어
항구의 겨울, 겨울의 항구는 공중에서 천천히 짓이겨지는 춤을 마냥 바라보기만 한다.
그러다 자신을 밟고 가는 연인들을 기습적으로 미끄러트리고는
항구의 겨울, 한 구의 시체라고 읊조리면서 유쾌한 관객들처럼 웃어 보이기도.
그래도 웃음이 뺄셈에 가장 가까운 것이라 믿으며 그 믿음을 얼린다.
항구의 겨울, 항구한 마음.
몇 해 전에도 분명 비슷한 걸 얼렸었던 기억이 떠올라 잠시 부두에 모여 떨고 있던 선박들의 빈자릴 쳐다봤지만,
결국 모든 것은 덧셈이겠지만, 영원히 영을 꿈꾸며. 최대한 동그랗게. 차가운 얼음을 얼린다.
나는 가만히 자리에 앉아 술잔 속에서 얼음 깨지는 소리를 듣는다
(그림 : 김세견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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