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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에 걸린 물살이 얼기 시작하면서
물이 뱉어낸 말의 부피는
스스로 강의 속살을 꽁꽁 묶었습니다
몸부림에 터져 나온 신음의 얼룩들 끌어안고
말이 되지 않았던 말들은
조용히 얼음 속 결박 아래로 가라앉습니다
살아 있기에 흘러야하고
살아남았기에 묶이기도 하겠지만
그 위를 아슬아슬하게 통과하는
저밀도의 삶은 헐겁기만 했고
미끄러지거나 고꾸라지기 일쑤입니다
흐트러진 마음을 잡아당겨
얼음의 표피를 수없이 쓰다듬어 보지만
견고한 장력은 허물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낯익은 다른 계절이 몰아온 바람이
강 언저리부터 발목을 담그면서
강가 풍경들은 주섬주섬 제자리를 찾아갔고
좀 더 깊은 속으로 발목을 밀어 넣자
얼었던 물들이 일제히 옹알이를 시작합니다
맨발의 당신이 잠시 다녀간 것뿐인데
스르르 물살을 흔들어
결박의 매듭이 풀리고야 말았습니다
그날 이후 강물은 쩡쩡 울기 시작하면서
그 울음 달래려
고니 떼 강 하구 모래톱에 콩콩 발자국을 찍습니다
동백꽃 툭, 떨어지고
화들짝 놀란 갯버들 빼꼼 실눈을 뜹니다
(그림 : 이황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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