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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경분 - 해빙기
    시(詩)/시(詩) 2019. 3. 14. 10:48

     

    그물에 걸린 물살이 얼기 시작하면서

    물이 뱉어낸 말의 부피는

    스스로 강의 속살을 꽁꽁 묶었습니다

     

    몸부림에 터져 나온 신음의 얼룩들 끌어안고

    말이 되지 않았던 말들은

    조용히 얼음 속 결박 아래로 가라앉습니다

     

    살아 있기에 흘러야하고

    살아남았기에 묶이기도 하겠지만

    그 위를 아슬아슬하게 통과하는

    저밀도의 삶은 헐겁기만 했고

    미끄러지거나 고꾸라지기 일쑤입니다

     

    흐트러진 마음을 잡아당겨

    얼음의 표피를 수없이 쓰다듬어 보지만

    견고한 장력은 허물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낯익은 다른 계절이 몰아온 바람이

    강 언저리부터 발목을 담그면서

    강가 풍경들은 주섬주섬 제자리를 찾아갔고

    좀 더 깊은 속으로 발목을 밀어 넣자

    얼었던 물들이 일제히 옹알이를 시작합니다

     

    맨발의 당신이 잠시 다녀간 것뿐인데

    스르르 물살을 흔들어

    결박의 매듭이 풀리고야 말았습니다

     

    그날 이후 강물은 쩡쩡 울기 시작하면서

    그 울음 달래려

    고니 떼 강 하구 모래톱에 콩콩 발자국을 찍습니다

    동백꽃 툭, 떨어지고

    화들짝 놀란 갯버들 빼꼼 실눈을 뜹니다

    (그림 : 이황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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