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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소영 - 엄니의 부지깽이시(詩)/시(詩) 2019. 3. 13. 10:03
부지깽이나물만 부지깽이가 아니다
한 시절 훈육의 연장
부엌살림과 희로애락을 같이했던
엄니의 한풀이 도구였다
가느다란 나뭇가지 하나가
불을 어르고 다루며
불에 데는 아픔을 견뎌야했다
불을 살리고 죽이는 것은
그의 힘이었다
밥이 끓어 넘치고 뜸 드는 소리에 가슴 달그락거렸던 시절
소죽 끓는 애달픈 노랫가락이 스민 지휘자
때론 길을 묻는 곳을 가리키기도 했다
눈코 뜰 새 없던 추수의 계절
콩단을 털어내는 도리깨질로 바빴다
묵을 쑤고 쩡쩡 얼어붙은 겨울 엿을 고고
음력 섣달그믐,
명절 준비로 처마 끝까지도 바빴을 시절
안 쓰는 방에 군불을 지피고
부엌 뒤란 솥뚜껑에 누름적 부칠 때도
얼마나 분주했을지
엄니의 머리에 쓴 하얀 수건이
그을린 자국으로 말해주듯
검게 탔을 엄니의 속
어느새 새해는 정지문 앞에 와 있고
그 시절 아궁이는 그리움으로 활활 타고 있는데
엄니의 부지깽이는 약해질 때로 약해져
키가 반으로 줄었다
(그림 : 이동섭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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