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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휘 - 빗금의 온도시(詩)/심재휘 2019. 2. 20. 18:40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 바라보는
아현동은 봄비 오는 밤이었다
큰길가에는 큰길을 따라 급한 경사로가 있어서
가파른 오르막 축대가
높은 어둠 속으로 스며드는 밤이었다
가로등의 젖은 불빛을 몸에 쓰며
벚꽃들도 옆으로 흩날리며 떨어져
내리막으로 비스듬히 흘러내리는 것이 벚꽃인지
봄비인지 아니면 또 하루였는지 알 수 없어서
미끄러운 빗금들 위를 몸을 곧게 세워 오르던 사람
가파른 축대를 따라 사실은 엎어질 듯 오르던 사람
빗물도 옛날 같은 아현동이었다
비 묻은 차창에 가슴이 높게 고인 아현동을,
없는 동네인 듯 아현동을 빗속에 두고
버스는 곧 비 그칠 것 같은 광화문으로 향하는데
우산도 없이 언덕을 올라가던 사람은
이내 집에 들었으리라만
빗금의 풍경은 번지고 번져서
한동안 지워지지 않을 봄비 오는 밤이었다
빗금에도 슬픔의 온도가 서리던 아현동이었다(그림 : 권대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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