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신미균 - 은밀한 스케치
    시(詩)/신미균 2018. 4. 7. 20:49

     

    네모난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벽도 천장도 목욕탕 타일도 네모입니다.

    싱크대 문짝도 냉장고 문짝도 네모입니다.

     

    아버지가 네모난 티브이를 켜놓고 주무시고 계십니다.

    햇빛도 네모난 베란다를 통과해서 얌전하게

    바닥에 네모나게 누워 있습니다.

     

    네모를 찔러대는 엄마의 잔소리에 주춤주춤

    네모가 잘려나가기 시작합니다.

    창문도 열지 않고 뭐하고 있냐

    창문을 열어젖히자 네모가 스르르 잘려나가다가

    다시 슬그머니 배를 깔고 마루에 눕습니다.

    밤낮 티브이만 틀어놓고 자면 무슨 수가 생기냐

    먹은 밥상은 왜 치우지 않았느냐

    엄마는 네모난 도마를 꺼내 호박을 동그랗게 썰며

    세상 좀 둥글둥글하게 살지

    뭣 때문에 그렇게 모가 나서

    회사마다 잘리느냐고

    또, 잔소리를 해댑니다.

     

    네모난 구석방에서 혼자

    막걸리를 마시는 아버지의 얼굴이

    오늘따라 더 각이 진 네모로 보입니다.

     

    엄마가 눈을 흘기며

    방금 전 만든 동그란 호박전을

    갖다 드립니다.

    (그림 : 임은정 화백)

    '시(詩) > 신미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미균 - 가족  (0) 2018.08.26
    신미균 - 착한, 당신  (0) 2018.07.10
    신미균 - 빨랫줄  (0) 2017.11.16
    신미균 - 아랫목  (0) 2017.06.21
    신미균 - 칵테일파티  (0) 2016.06.05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