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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관 - 벽촌서신시(詩)/전영관 2018. 3. 21. 22:57
햇살이 잘 여물어 한 줌 습기도 없습니다
봄에야 몽롱하니 마음도 일어나지 않았고
여름에는 빗물이 섞여 불량품이 될 게 자명했기에
땡볕일지언정 탐내지 않았습니다
주먹만 한 크기로 눌러 농축시켰으니
전등 대신 방에 달면 맞춤입니다
저녁에 뭉친 것들은 노을빛이 스미어 은은합니다
망설이다가 가을을 절반이나 허비했습니다
마당에 두면 찬연하고 따사로운데
방에 걸면 시나브로 사위는 것이
제가 주인이 아니라는 뜻만 같습니다
그 방에서나 환하고 은은하고 청명할 모양입니다
어둠은 내 혈족 눅눅함은 나만의 소유
적막이 이곳의 특산물이지만
뭉쳐둔 빛만 들고 가겠습니다
마당에 보퉁이 있거든 다녀갔구나 여기시면 됩니다
시월은 시월이고 단풍만이 단풍입니다
당신만이 나의 당신임을 용서바랍니다.
(그림 : 김순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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