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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영관 - 남행
    시(詩)/전영관 2018. 3. 21. 22:25

     

    꽃은 무릎으로 봐야지
    고개 들게 만드는 벚꽃 말고 민들레나 제비꽃은
    무릎으로 만나야지
    귀퉁이에 의붓자식처럼 주저앉아 버짐 핀 노랑을 보면
    갈잎을 밀치며 올라오는 보라색 표정을 보면
    등신이라 핀잔하고 싶은 것이다
    저 잘난 벚꽃을 반이라도 닮을 일이지

     

    청산도행 여객선 이물에 서 있으련다
    꼭 있어야만 하겠다는 것들로
    보퉁이 여미고 입도(立島)하는 노인네들 안색에서
    벚꽃 아닌 민들레 제비꽃을 볼 수 있겠다

     

    봄이 설렘이라는 거짓말은 누가 유통시켰나
    설탕물 같은 약속은 또 누가 마셔 버렸나
    먹던 떡 같은 노인네들
    이마의 주름이나 세면서 내리겠다

     

    못 먹고 자란 장남처럼 키 작은 소나무 허리께를
    얼굴 잊은 동창생 되어 만져 보겠다
    두어 걸음마다 민들레 제비꽃 들여다보느라
    무릎 구부릴 걸 짐작한다면
    엽서 따위는 기다리지 말아라

    (그림 : 최광선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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