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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은 저 혼자
팥죽 같은 노을 한 그릇 퍼먹고 퇴근했다
몇몇은 불판 앞에 모여 상사를 씹고
삼겹살을 씹고 질긴 하루를 씹는다
호떡 장사 아줌마는 모로 누워
식어가는 호떡 자세로 기대앉았다
폐지 할머니는 맹수의 아가리 같은
빙판 골목을 어떻게 지나갔을까
늙는다는 건
세상이 자신과 반대 방향으로 달음박질하는 기분
비명을 지르는데 소리가 나오지 않는 상황
복권집 사내는 복이 빗나간 얼굴로
담배를 피운다 주름과 연기가
구분할 수 없는 무늬로 어룽거린다
골목에 들어찬 어둠은 촘촘하게 얼어 있다
양손으로 한 웅큼 쥐고 무릎에 눌러 분지르면
정시에 퇴근한 자들의 뒷모습이 우지끈,
쏟아질 것 같은 심야다
(그림 : 김구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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