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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관 - 월림부락 대밭집시(詩)/전영관 2018. 3. 21. 20:25
빈집이 폐가가 되기까지
마당의 살구꽃 송아리는 몇 번이나 펼쳐졌는지 몰라
누렁이는 빈 여물통을 뒤집고
외양간 기둥을 들이박아 새벽을 재촉하던 집
삼남 삼녀 여섯 멍울들
딸들 수다에 댓돌 모서리도 둥글게 닳아버리고
아들들은 불퉁스레 소가지나 부리던 집
아들들 코밑 검어 대처로 가고
딸들도 허벅지 굵은 사내 따라 살림을 내고
누렁이는 발굽짐승이라고 떼거리로 생매장당한 집
두 노인네 점심거리 싸 들고 밭으로 가면
빈집인지 폐가인지 구분도 못 할 터인데
바람이 자발없이 바지랑대 빨래까지 떨어트려 놓던 집
몸은 낡아 돌쩌귀 뻐개진 정지문처럼 삐걱거리는데
마음은 더디 늙어서
읍내 갈 때 바르던 명자꽃 색깔 립스틱만큼이나 더디 늙어서
저만치 떠밀린 몸을 따라가느라 잠도 오지 않았을 텐데
바깥 노인네는 영영 돌아오지 않을 바깥으로 가버리고
안 노인네 혼자 남아 신을 사람 없는 고무신을 닦던 집
노인네 둘은 석관 옆에 낸 구멍으로 손을 내밀어
봄볕에 마실이나 다니는지 어쩌는지
이젠 거기가 동백 두 그루 새치름한 새집
푹 익은 감자달이 대숲에 찔려 오도 가도 못하는
월림마을 이계철 씨 댁
빈집은 잠시라도 말의 온기를 흘리지 않으려 입을 오므리게 되고
폐가라고 부르면 발음의 끝이 벌어져 죄다 흩어질 것만 같아
육남매 모두 우리 집 우리 집 하는 거기
빈집에서 폐가까지의 거리가
저녁마다 달그락거리던 숟가락 앞뒷면만 같아
기일이면 모여 앉아 우리 집 우리 집 하는
월송리 월림부락 308번지
(그림 : 김우식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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