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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영관 - 귀촌
    시(詩)/전영관 2019. 1. 19. 19:59

     

    오후 네 시의 햇살은 손이 느리다

    옆집 숟가락까지 챙기는 산촌의 오지랖처럼

    호박이며 무와 몸을 뒤채는 가지까지 매만진다

    당신은 등 돌리고 앉아 오가리들과 자분자분

    비밀이라도 있는 듯 들췄다가

    남이 들을까 가만히 덮고

    여고 동창생 표정으로 내가 모를 것을 나눈다

    겉마르기 전에는 탱탱했다고

    사소한 것들도 내남없이 화려했던 날은 있겠지

     

    마음 단단히 먹어야 귀촌한다고 우쭐대면서

    진지한 척 머리로만 예행한다

    조붓한 당신 뒷모습을 콩밭에 앉혀놨다가

    주방으로 가는 걸음걸이를

    파스 사러 읍내 나가는 길 위에 올려본다

    서울 새댁 곱다느니 머리숱도 많다느니

    허리 굽은 인사말에 매달려 노인네들도 동행하겠지

    읍내 나갔으니 중국집까지 들르겠지

     

    아내는 콩밭에 앉히고 읍내 심부름이나 시키고

    녹슨 보습만큼 게으른 나는

    밭고랑과 씨름하다가 삽자루 팽개치고 씩씩거리겠지

    멀찍이서 구경하는 이장에게 너스레나 떨겠지

    군대에서도 삽질은 잘했는데

    돌밭이라 삽이 먹히지 않는다고

    도시에서 남용했던 핑계를 꺼내겠지

    걸음 느린 햇살 아래 손부채질을 해대겠지

    (그림 : 정지석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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