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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준 - 생각담요 아래 살다시(詩)/시(詩) 2018. 1. 9. 10:03
바람이 덩어리로 지나다니는 겨울,
저녁입니다
무거워진 생각을 발끝으로 차며 걷는데
별안간 생각은 오래전
아랫목에 펼쳐놓은 밍크담요가 되어
펄럭이다 따뜻해집니다
안을 들춰보니
자고, 고요하고, 가느다란 옛날이
아무것도 모른 채 살고 있었습니다
어깨가 굽은 순한 가장들과
콩나물국에 밥을 말아 먹는 식구들
골목과 마당과 연탄 속을 뛰어다니는 잠든 쥐들
같이 살던, 쥐들
점선으로 걸음을 그리며 다가오는 저녁도
여전히 살고 있었습니다
다시 담요를 덮고
주문을 외우고 눈을 감으니
골목을 데리고 사라지던
두부장수 종소리
느리게 오는 기억은 오는 동안
귀퉁이를 잃지요
담요 아래서나 살지요
차가워진 턱 아래를 만져봅니다
지붕 아래 숨어 사는 고드름들이
한꺼번에 물이 되어
쏟아질 듯 흔들립니다
(그림 : 이준옥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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