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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 : 장병관)
사다리 타고 올라가서
탄저병 걸린 사과알들 따낸다
작년 그러께와 다르게
아줌마들 품 사서 솎아댈 만큼
사과가 종알종알 달렸었는데
초여름에 멧돼지 가족 들이닥쳐
가지가지 죄 찢어놨다
잘라낼 것 잘라내고 동여맬수록
발길 옮길수록 오만정 다 떨어지는 엉망진창도
먹고 살려는 녀석들 몸부림도 눈에 아팠다
주둥이로 앞뒷발로 닥치는 대로
파헤치고 찢어발겼을 몸부림이
이 사과밭만이랴
그루마다 몇개 안달렸지만
가지마다 밥알처럼 툭툭 불킨
내년에 필 꽃눈들에 나만 속어랴
탄저병과 잎마름병과 땡볕이 어울린 사과밭
사다리 그만 좀 내려가라고
꽃눈 다치겠다고 더운 김 뿜어내는 사과밭
무성한 풀 예초기로 족치며 멧돼지 안탄다는
전기목책을 신청할까 말까 망설이며
망설이며 나는 사과농사꾼이 되어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