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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도는 영혼은 언제나 포구에서 길을 잃는다
여기까지 끌고 온 길은
또 어디까지 끌고 가야 할 길이냐
긴 세월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을
좁은 바닥의 비릿한 살 냄새
배고프면 파도는 더 많이 출렁거리고
갈매기도 먹이 앞에선 자유롭지 못한 것을
양철지붕 파이도록 의문에 잠 못 이루던 그 누가
신열에 들떠 눈 부릅뜬 채 여기 섰던 것이냐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여도 벅차기만 한
떠나온 길은 떠나갈 길
아이들은 자라 서울로 가고
서울사람 이곳에서 잠시 횟감에 빠졌다간 달아나는데
내장을 다 발리고도 펄떡이는 동해의 한자락을
묵묵히 밟고 서서
누가 오래도록 해진 그물을 깁던 것이냐
상처는 건드리면 커지는 것인지
좀체 속을 보이지 않는 무표정 속의 아득한 욕망을 적시는
밤 가득 후줄근한 등불꽃
사람들은 멋대로 취하고
파도는 저 혼자 더 먼 곳으로 나가 길을 잃는다
(그림 : 정의부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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