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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종 - 평정(平正)시(詩)/고재종 2017. 9. 11. 15:17
저무는 들녘, 써레질 뒤끝에
논을 고르는 사람이 있다.
그 흙이 아무리 부드러운들
흙굴헝 진창 속에서
흙굴헝 진창을 밀고 당기며
모낼 논을 고르는 사람이 있다
저 논 어느 한 곳인들 높낮으면
어린 모 한쪽은 썩어나고
한쪽은 바싹 말라붙으리니
온몸의 흙감탱이인들 마다하랴
석류빛 저녁놀이 씻어내고
엉머구리의 신명이 북돋우는
이 지상에서의 마지막
저 외롭고 쓸쓸한 노역이여
그 모진 땀과 눈물로
하늘의 별톨인들 못 밝히랴만
저 세상 고르기의 마지막
순정의 높이가 아니라면
푸른 지평선인들 어찌 바라랴
쭉쭉쭉쭉, 머슴새 소를 몰듯
스스로를 몰아대며
논을 고르는 사람이 있어
보랏빛 이내가 덮는 들이 있고
마을은 모낼 꿈으로 뒤척이리니
(그림 : 김용옥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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