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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태 - 길의 외출시(詩)/김선태 2017. 7. 28. 10:44
보름달밤이면 길은 환하게 마을 나섭니다.
어떤 길은 휘청휘청 산을 오르다 중턱에 앉아 쉽니다.
어떤 길은 느릿느릿 들판을 헤매다 다른 길과 얼크러져 밀밭으로 숨습니다.
어떤 길은 바다 위를 걷고 싶어 방파제 끝에 우두커니 앉아 있습니다.
어떤 길은 계곡 속으로 깊이 사라져 감감무소식입니다.
어떤 길은 술에 취해 비틀비틀 산길을 내려오다 평지에서 그만 나자빠집니다.
그러나 모두들 소복한 채 아무 말이 없습니다.
아무 말이 없습니다.
새벽녘에야 마을로 돌아오는 길은 초췌합니다.
(그림 : 이동업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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