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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선태 - 홍어
    시(詩)/김선태 2017. 1. 25. 10:48

     

    해는 저물고 눈은 퍼붓는데

    친구야, 우리 선창 뒷골목 홍어 먹으러 가자

    현란한 불빛, 질주하는 차들의 거리를 지나

    삶의 비린내 진창으로 풍기는 곳 홍어 먹으러 가자

     

    그곳은,

    산전수전의 늙은 내외가 변함없이 홍어를 써는 곳

    잘 삭은 홍어에 묵은 김치와 막걸리가 어우러진 곳

     

    세상 풍파를 주름지게 만난 손이 아름다운 손이야

    오래 삭힌 음식이 깊은 맛과 향을 지니는 법이야

    사람도 그렇고 시도 그렇지 아니하냐는

    늙은 주인 골코름한 말씀에,

     

    세월이 흐르면 아픈 기억도 추억이 된다지요

    사람의 소리도 곰삭으면 그늘을 친다지요

    오호라 세상만사, 그렇지 아니하냐며

    시절가 한 대목으로 화답하다 보면,

     

    얼씨구나

    우리는 홍어 속살처럼 얼굴이 붉어지고

    알싸한 감동으로 코끝이 시큰하거나

    절씨구나

    사는 일 아름다워 눈물마저도 찔끔 나거니

     

    밤은 깊어가고 눈은 무장무장 쌓이는데

    친구야, 우리 선창 뒷골목 홍어 먹으러 가자

    새천년이 온다고 괜시리 부산떨어 무엇하리

    이렇게 느긋하게 퍼질러앉아 홍어나 씹으며

    저무는 천년의 마지막 술잔을 나누자

    (그림 : 설종보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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