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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화은 - 본인이 무식하여
    시(詩)/이화은 2017. 6. 10. 09:45

     

    첫아이 출생 신고가 늦은 내게 동사무소 직원은 일정 금액의 벌금과 함께 사유서를 쓰라고 했다

    왜 벌금을 내야 하는지 뭐라고 이유를 대야 하는지 어리둥절한 나를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던 동사무소 직원이 겨우 말문을 터주었는데

     

    - 본인이 무식하여……

      

    그때부터 나는 국가가 인정한 무식이 되었는데

     

    달달한 커피 한 잔이면 하루가 행복한 나 같은 보통 아낙도

    근심하고 또 근심해야 하는 무식한 국가의 백성이 되었고

     

    악인에겐 한없이 관대하고

    시리고 아픈 손은 매몰차게 뿌리치는 무식한 종교의 신도가 되었다

     

    다시 태어나면 혼자 살꺼야 꿈같은 꿈을 꾸면서도

    자식의 등을 떠미는 무식한 어미가 되었고

     

    독자와 필자를 잠시 혼동하여 덜컥 시인이 되었으니,

    이리저리 두꺼운 발바닥에 밟히고 차이는 무식한 시인이 되었으니

     

    그 무식이 드디어 하늘을 찔렀다

     

    본인이 무식하여 함부로 태어났으니…

    그 동사무소 직원에게 고하고 벌금에 덤이라도 듬뿍 얹어주면 내 출생을 감쪽같이 지울 수가 있을까

    나는 정말 없었던 내가 될 수 있을까

       

     “먹고 죽자”

    무식한 건배사 같은 눈치 없는 저녁이 오늘도 막무가내 밀고 들어오는데

    (그림 : 서정임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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