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이화은 - 산나물
    시(詩)/이화은 2017. 7. 3. 22:00

     

     

    시집 온 새댁이 산나물 이름 서른 가지 모르면 그 집 식구들 굶어 죽는다는데

     

    ― 가죽나무 엄나무 두릅나무 오가피 참나물 참취 곰취 미역취 개미취 머위 고사리 고비 돌나물 우산나물 쇠뜨기 쇠무릎 원추리

    아풀 메꽃 모싯대 비비추 얼레지 홀아비꽃대 노루오줌 환삼덩굴 마타리 상사화 꿩의다리 윤판나물 자리공

     

    촌수 먼 친척 같기도 한 동네 동무 같기도 한 귀에 익은 듯 낯선 이름들

    가난한 가장의 착한 반려자처럼 덩그러니 밥 한 그릇

    고기반찬 없는 적막한 밥상 사철 지켜 주던,

     

    생으로 쌈 싸먹고 무쳐 먹고 국 끓여 먹고

    말렸다가 나물 귀한 겨울철 묵나물 먹기도 하지만

    그 성질 마냥 착하고 순하기만 한 것은 아니어서

    홀로 견뎌낸 산 속 소태 같은 세월

    어르고 달래어 그 외로움의 어혈을 풀어 주어야 한다

    독을 다스려 약으로 만드는 법을 이 땅의 아낙들은 모두 알고 있으니

    간나물 한 접시보다 산나물 한 젓가락이 보약이다

    조선간장 파 마늘 다져 넣고 들기름 몇 방울 치면 그만이다

    먹고 사는 모든 일에 음양의 조화가 있듯

    음지에서 자란 나물과 양지 나물을 섞어 먹는 일

    남과 여가 한 이불 덮고 자는 일과 다르지 않으니

    이 모든 이치가 또한 손 안에 있다

    손맛이다

    여자의 맛이며 아내의 맛이며 어머니의 맛이다

    삼라만상의 쌉싸름 깊은 맛이 모두 여기에 있다

    (그림 : 김대섭 화백)

    '시(詩) > 이화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화은 - 세상의 모든 2절  (0) 2019.05.31
    이화은 - 물 끝, 마음 끝에서  (0) 2017.11.12
    이화은 - 본인이 무식하여  (0) 2017.06.10
    이화은 - 더 늙어서 만자는 말  (0) 2017.03.05
    이화은 - 쑥 캐기  (0) 2015.02.10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