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홍섭 - 자작나무숲을 지나온 바람시(詩)/이홍섭 2017. 5. 7. 14:31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창을 열고 대관령을 보네
친구들은 대관령을 넘는 게 꿈이라고 했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영 너머를 넘어가는 꿈 같은 건 꾸지 않았네
하긴 이상하지, 왜 나는
일찍부터 한곳에 머물길 원했었는지
왜 일찍부터 저 너머, 미지의 세계를 꿈꾸지 않았었는지
하지만 후회 같은 건 없네
내가 가장 먼저 창을 열고 대관령을 바라보는 것은
순전히 흰 자작나무숲 때문이지
대관령을 넘어온 찬 바람이
이마를 스치는 순간, 나는 대관령 정상에서
무리 지어 자라는 흰 자작나무 떼를 상상하게 되네
자작나무 떼를 지나온 하얗고
투명하고, 수정처럼 차디찬 바람 말일세
고향에 돌아온 것은
순전히 이 바람을 맞고 싶어서이지
여름 가고, 가울 가고
흰 눈 내리는 겨울이 와도
영 너무 도시에서는 이 바람을 맞을 수 없었다네
다시 고향에 돌아온 것은
순전히 자작나무숲을 지나온 바람 때문이라는 걸
이 아침은 깨우쳐주네
창을 열면
거기 흰 갈기를 날리며
수백 마리 백마가 바다를 향해 달리지(그림 : 백중기 화백)
'시(詩) > 이홍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홍섭 - 고들빼기 (0) 2017.12.17 이홍섭 - 주인 (0) 2017.09.25 이홍섭 - 폭설 (0) 2016.12.13 이홍섭 - 아야진 (0) 2016.10.25 이홍섭 - 내 마음 속의 당나귀 한 마리 (0) 2016.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