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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 상암동의 쇠가락시(詩)/신경림 2017. 1. 22. 16:58
동이 트기 전에 상암동 산동네 사람들은
타이탄 트럭에 짐짝처럼 실려
소삿벌 비닐 채마밭으로 들일을 나간다
소주 한 주발에
묽은 된장국으로 시작되는 들일은
시골살이보다 오히려 고달퍼서
때로 뽑힌 명아주 뿌리로
눈에 핏발들이 서지만
다시 타이탄 트럭에 짐짝으로 쟁여
돌아오는 상암동 산동네는
고향만큼이나 정겨운 곳
낯익은 악다구니에 귀에 밴 싸움질들
좌도 상쇠 우도 끝쇠
느린 길굿가락으로 이내 손이 맞아
호서 버꾸잡이까지 어우러져
덩더꿍이 가락에 한바탕 자지러진다
보라 판이 끝난 뒤에도 그 쇠가락
저희들끼리 낄낄대며 골목을 오르내리다
잠든 산동네 사람들
고단한 꿈속엘 숨어들어가
붉고 고운 열매로 맺히는 것을
소삿벌 비닐 채마밭에까지도 뿌려질
질기고 단단한 열매로 맺히는 것을
새벽이면 상암동 산동네 사람들은
그 열매를 하나씩 속에 안고
소삿벌 비닐 채마밭으로 들일을 나가고(그림 : 김정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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