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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선경 - 마늘 한 접시(詩)/성선경 2016. 12. 4. 15:15
세상에 믿을 것이 없다는 것은
저문 들녘에 서서 불타오르는 노을을 보면 안다
내일이면 해는 또 떠오를 것이고
다시 들녘에 나와 물꼬도 틔우겠지만
한 철의 노동을 마감하면서
내 씨알 같은 땀방울들이 저토록
허망한 기포같이 떠올라서야
마늘 한 접이 금 가면 못 쓰는
플라스틱 바가지 하나보다 못한대서야
어찌 믿을 수 있으랴 소금 같은 세상
그 곰보 같은 세상, 생각하면
누구의 이름을 빌려 욕할 수 없는
농투산이가 그저 미울 뿐이다.
멜론이나 키위들이야 미더울 것이 못 된다는 것은
저 건너 또 다른 대륙에서 넘어온 이름이어서
코쟁이 코 풀고 지나가면 남는 휴지쪽처럼
냄새를 풍기며 썩을 수도 있겠지만
이 땅의 소금쟁이 벌거숭이 농투산이들
저 근본 같은 내음의 마늘 쑥조차
저렇게 불붙어 타오른다면
어찌할거나 이 저문 들녘에 서서
저 노을처럼 마늘 한 접 타고 있는데
울거나 웃거나 마찬가지 농투산이 하회탈
저 노을처럼 속만 타는데.(그림 : 김백자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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