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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선경 - 물끄러미 해변시(詩)/성선경 2016. 9. 2. 14:37
가지를 슬쩍 흔드는 바람은
꼭 나뭇가지에게 할 말이 있어서가 아니지
잎사귀를 툭 치고 지나가는 것은
바람에게 꼭 무슨 뜻이 있어서가 아니지
물을 말도 없이 그냥 모른 척 아니 아닌 척
가만히 물끄러미 한 게지
그곳에 가면 해변 가득 물끄러미만 살아
물끄러미 바라보는 앞으로 섬 두엇
물끄러미 정박한 고깃배 서넛
물끄러미 미더덕을 파는 아줌마 하나 물끄러미
긴 참회 끝에 기도가 끝난 머리들이 고개를 들 듯
뒤편 산을 따라 올라가며 집이 대여섯 물끄러미
소나무 네댓 그루 물끄러미
대숲에서 새 몇 마리 포로롱 포롱 가을 하늘이 물끄러미
밤밭고개를 지나 장지연로를 지나 오른편으로 꺾어
땀 흘리는 참숯가마를 왼편에 두고
골프 연습장을 지나 다시 오른편 왼편 다시 오른편 다시
만나러 간다 물끄러미
가끔 허파가 근질근질하면
눈이 어질어질하면
나도 물끄러미
저도 물끄러미
찾아가 할 말도 없이 물끄러미
물을 말도 없이 물끄러미.
(그림 : 장순자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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